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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직업, 그리고 예술가가 되기

2010/10/18 00:56, 글쓴이 잡종
영어를 처음 배울 때는,
영어 단어와 우리말을 일대일로 매핑하면서 익히게 된다.
I am a boy. 나는 소년 입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좀더 배우게 되면, 일대일로 매핑이 안되는 문장들이 나온다.
How are you? 너는 어떻게? 라고 해석하지 않고, 잘 지냈어? 요즘 어때? 라는 식으로
우리말과 영어식 표현이 다른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런 문장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What do you do for a living? 너는 생활(생계)을 위해 무엇을 하니?
영어권 애들은 직업이 뭐냐고 직접 안 물어보고, 풀어서 표현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답은, 보통 직업명이 나온다.
I am a doctor. 나는 의사야.

"너는 생활을 위해 무엇을 하니?"
"나는 의사야."

나는 의사야...라고 말한 사람은,
본인의 생활을 얘기할 때, '의사'라는 직업을 얘기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는, 본인은 '의사' 외에는 전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 수도 있다.

의사라는 직업명 대신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너는 생활을 위해 무엇을 하니?"
"나는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게 병을 고쳐주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어."

내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된다.
"너는 생활을 위해 무엇을 하니?"
"나는 회사원이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나는 고용주가 주는 월급을 받아 먹으면서 살고 있어."
"나는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댓가로 월급이라는 걸 받으면서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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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학교를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한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없어지게 되면
막연한 불안감이 생겨 어디든 소속이 되려고 한다.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있던 것이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소속이 없다는 것에 굉장히 불안해한다.

고시나 자격증 등을 공부하는 이들도
소속이 없다는 불안함에 대학원을 가거나, 휴학을 하는 등
어떻게든 어디에든 소속해 있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우리네 아버지들도
은퇴 후에 가장 힘든 것이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공허함이라고 한다.
오륙십년 동안 학교, 회사로 이어지며 소속 생활을 하셨으니 그럴 것이 당연하다.

나도 그렇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무 고민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지원한 회사에 떨어지면 좌절하고, 다시 준비하고 지원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회사 외에 다른 길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한 군데 합격이 되서 드디어 회사라는 곳을 다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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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은 참 어이없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1학년 말, 수학을 잘하면 이과, 못하면 문과라는 기준에 의해 선택된 문과/이과,
대학 원서 넣을 때, 보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점수에 맞춰 선택된 학교/학과,
회사 취업할 때, 어디든 취업해야한다는 강박감에 어디든 합격되기만한 곳으로 선택된 직장,
회사 들어가서는, 회사의 필요에 의해 HR 담당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택된 직무.

내가 그 일에 적성에 맞고 잘 할 수 있고 열정적으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가보다는,
그 업무를 해야할 사람이 모자라서, 회사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그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업무가 나의 직무, 분야가 된다.

2001년 12월에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다.
회사에서는 컨텐트/서비스 기획이라는 업무를 나에게 부여한다.
나는 다행히 기획이라는 업무가 그리 싫지 않았다. 할 만 했고, 나름 재밌게 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초년생들은
입사 후 3개월, 첫 방황과 고민이 시작된다.
방황을 해도 특별한 해결책은 없다.
그렇게 또 3개월이 흘러 6개월 째 다시 고민이 찾아온다.
그렇게 다시 1년, 2년... 점점 주기가 느려진다.
5년, 10년...

이 정도 되면, 입사 초기에 했던 적성과 비전에 대한 고민은 없어진다.
그동안 해온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온다.
아니, 새로운 일은 지금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 아까워,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사내외 교육을 듣기도 하고, 책도 찾아가면서 읽기도 한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을 한다.

한 분야에서 계속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라면 그 분야가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거다.
근데 막상 본인 스스로 전문가일까를 생각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맡은 일은 깔끔하게 할 수 있겠는데,
회사를 나와서 그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특히, 갑(甲)에서 을(乙) 관리만 해 온 사람이라면, 회사 내에서는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 있어도,
회사를 나오는 순간 전문가 소리는 아무도 해주지 않을거라는 걸 본인이 더 잘 안다.
그래서 그 회사 안에서만 전문가 소리를 들으면서 생존해나가는 수 밖에 없다.
을(乙) 생활을 하며 치열하고 빡시게 살아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독립해서 전문가로서의 밥벌이를 할 수 있겠냐고 하면 자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도 기획이라는 업무를 맡은 후, 지금까지도 기획..이라는 업무를 하고 있다.
대학원 2년 빼면, 7년이 넘게 기획이라는 업무만 하고 있는데,
스스로 기획에 있어서 전문가라고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놀았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성실하게 열심히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다들 그렇지 않나?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가.

허나 지금 생각해보면,
기획이라는 업무를 잘 하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나에게 직업이란, 회사에서 일을 잘 하는 것이라는 생각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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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첫 회사에 입사한 이후,
2010년 10월 현재까지 4번 이직하여 5군데의 회사를 다녔다.

처음 이직할 때는, 너무나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모회사의 부도로 하던 사업을 전부 중단하는 상황이라,
2년차에 일에 재미를 붙여 열정이 있던 시기였다.

첫 회사보다 더 작은 규모의 벤처 회사로 옮겼다.
그 곳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경력 입사자로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곧 이직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열정적으로 일하던 시기가 지나고,
회사의 비전, 조직과의 갈등 등이 생기면서 다시 이직을 결심한다.

회사원으로서 업그레이드한다는 것은,
연봉을 높이거나, 더 큰 회사로 옮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회사 규모가 크고 인지도가 있는 곳으로 옮기기로 한다.
나름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회사로 이직을 하니,
실제로 나 스스로도 업그레이드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달라진 건 없었다.
어떤 회사에서 일을 하느냐만 달라졌을 뿐, 내가 달라진 건 없었다.

좋은 회사, 큰 회사를 다닌다고 개인들도 저절로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이 아니건만,
대외적으로 보이는 것이 변한다고 해서 내 자신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건만,
나 스스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변화하는 것에 노력을 하지 않고,
밖으로 보이는 모습만 더 좋아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었다.
더 큰 회사에서 일한다고 내가 발전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성을 갖기 위해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불안하게 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런 고민을 내년에도 또 할 것이 분명했다.
뭔가 변화를 하지 않는다면, 이 고민은 매년 되풀이될 것이 분명했다.

어찌댔든 상황을 변화시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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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설령 변화를 한 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변화를 했기 때문에 그것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걸 얻은 것이다.

변화의 결과가 더 안 좋게 될까봐 걱정을 하고
두려워서 변화를 하지 않는다면, 평생 걱정만 하고 살게 될꺼다.
변화는 좋던 싫던 계속 행해야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얻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나도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변화를 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나의 경력을 더 잘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잠깐 경험했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쉬운 길을 찾았다.
학벌. 좋은 학벌을 갖는 것으로 전문성을 획득하려고 했다.

물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이 있고,
여러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얻은 것들이 있다.
허나 그것만으로 전문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공부도 역시 강한 내적 동기가 있어야지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비록 스스로 전공을 선택하고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지만은,
내적 동기가 부족했다.
변화를 위한 변화를 했던 것이 문제였다.
전문성을 공부와 학벌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발상이 문제였다.

결국은,
나의 능력, 강점, 비전, 가치 등 본질적인 자아에 대한 성찰이 없었고,
인생을 살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부족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도, 아무 생각없이 취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돈 버는 것이 급급하여 전문성을 살리는 일은 엄두도 못내고 다시 기획 업무로 취업을 하게 된다.
소위 대기업으로 취업을 했다. 회사가 또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는 2년 6개월이 지났고 현재가 되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다. 나는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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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핸디의 '정신의 빈곤'에 보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생계유지형, 외부지향형, 내부지향형의 세 가지 심리 유형으로 구분했다.

생계유지형은 돈과 안정이 삶의 전부인 사람들이다.
돈을 적게 벌어서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며
오로지 끊임없이 돈을 위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배타적이고 자기 방식에 안주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외부지향형은 존경과 지위 추구형으로,
외부적인 성공, 겉으로 보이는 성공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높은 성취욕을 가졌으며, 지적이고 교육을 많이 받고 야심적이다.
사람들의 평가, 인정이 가장 중요해서 외적인 평가가 본인의 성공의 잣대가 된다.

내부지향형은 가치 추구형으로,
내면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삼고, 자신의 재능과 믿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개인적인 성숙, 자아 성취, 감수성, 자신과 타인의 삶에 가치를 둔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회사에서는 가장 기피대상이라고 한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생계유지형에서 외부지향형으로, 그리고 내부지향형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고 한다.
개개인이 사람들도 처음에는 생계유지형으로 살다가,
세속적인 성취를 위해 사는 외부지향형으로 바뀌고,
외부지향형을 겪은 후에는 점차 내부지향형으로 변화한다.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얼마나 큰 성취를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내부지향형의 단계로 진입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결국 자아를 찾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4번의 이직과 5군데의 회사를 다니면서 남은 것은
어딜가나 똑같고, 나는 변함이 없다는 진실이다.

변함이 없는 '나'를 알아야한다.
본연의 '나'를 찾아야한다.
OO회사 OO팀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내 이름 석자만 가지고 나를 찾아야한다.
원초적인 나의 재능, 나의 가치를 발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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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고딘은 최근작 '린치핀'에서
줄곧 '예술가가 되어라'라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예술가는,
윗 사람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고 도전하는 사람,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는 길을 찾는 사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 강렬한 끌림으로 일하는 사람,
마음과 영혼으로 작업(The work)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라도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지
어떤 사람이 높은 값을 지불하기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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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생활을 위해 무엇을 하니?"

현실은 이렇다.
"나는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댓가로 월급이라는 걸 받으면서 살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 바뀌어야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작업을 하며 살고 있어."


껍데기를 벗어버리자. 나를 찾자.
예술가가 되자. 아트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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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8 00:56 2010/10/1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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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섯, 지난 10년에 책임을 묻다.

2010/09/25 18:24, 글쓴이 잡종
서른 다섯.

성인이 되어 자유를 얻은지 16년,
대학 졸업하고 밥벌이를 시작한지 9년,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던 30대가 된지 벌써 5년.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이, 마흔이 되기 불과 5년 전,
사오정이라는 불쌍한 나이가 되기 10년 전.

그리고 살아가야할, 아직도 많이 남은 날들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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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인생을 선택하고 결정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였지 싶다.
자유와 선택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누려지는 많은 시간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허술하게 낭비하였다.
겨우 찾아낸 대안이 밤새 술을 마시고 다음날 오후까지 뻗어있다가
저녁에 다시 약속을 만들어 기어나오는 일상을 반복한다.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술 먹고, 그래도 할 게 없으면 집에서 먹고 자고, 빈둥댄다.

요즘 대학생들은 전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안다.
인턴, 알바, 봉사 활동에 토익 공부, 자격증 따기 등
이력서에 몇 줄 더 써 넣을 소위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해 너무나 바쁘다.

내가 대학 다니던 90년대 중반에는 그래도 대학 생활의 한가로움이 있었다.
적어도 97년 IMF 이전까지는 그랬다.
IMF가 오고 나서야 사회가 녹녹치 않은 곳이구나라는 걸 알고
그제서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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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를 위해서는 취업하는 것 외에는 상상할 수 없던 시절,
어찌어찌 취직하여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사회 초년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름 열심히 해보지만,
모회사의 부도로 1년 5개월만에 이직을 한다.
이후 두 번의 이직과 변화 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만다.

직장 생활 처음할 때의 자신감과 패기는 없어진지 오래,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구별짓기, 아니 구분되기 시작한다.

업무에 대해 좀더 지식을 쌓아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큰 꿈을 안고 대학원을 진학, 공부라는 것에 연을 붙여볼까 했건만,
이 길도 아닌듯 하여 석사 학위로 만족하고 졸업한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대학원 2년 공부 좀 했다고 되는 것이 절대 아닐진데,
타이틀로 전문가가 되겠다는 순진하면서도 불순한 생각을 했던 것.
졸업 후 조금더 크고 안정된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지만,
회사 생활은 어디나 똑같다는 걸 느끼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생과 미래에 대한 나 자신의 근본적인 부분은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학벌, 타이틀, 명성만을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는 이렇다.

국내 명문 대학 및 대학원 졸업. 현 국내 상위 10대 대기업 과장.

남들이 알아줄만한 스펙과 안정된 직장.
하지만, 나는 왜 내 삶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걸까.
행복한 고민이다... 등따시고 배부르니깐 별 고민을 다 한다고...

더 대단한 회사, 더 높은 연봉, 더 멋진 업무를 하게 된다면
더 큰 만족을 얻고, 더 행복한 삶을 산다고 느낄까.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할 수 밖에 없고,
이직해서 회사를 옮겨봐야 결국 다 똑같고,
임원까지 승진할 수 있는 확률은 적은데,
적당히 부장까지 버티다가 짤리면 뭘 해야되는지...
회사가 아닌 다른 것은 고민해본 적도 없고,
딱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될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은 준비되지 않음에 대한 죄책감이다.
지난 10년 동안 더 치열하게 살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히 했다면
두려움과 공허함이 없었을까.

나 스스로 근원적인 변화에 대해 노력하지 않고,
현재의 안정적인 월급의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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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거의 선택과 행동이 현재의 내가 되고,
현재의 나의 선택과 행동이 미래의 내가 된다.
지금 나는 분명 과거의 나로부터 온 것이다.
나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가 지금의 나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IMF가 갑자기 왔고, 다니던 회사가 부도났고, 회사는 적성에 안 맞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환경들에 이유를 묻는 건 핑계일 뿐이다.
지금의 초라한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구차한 변명이다.
내가 잘 살아왔다는 걸 조금이라도 인정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현재의 나라는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치졸한 자기회피이다.

지금의 나는 전적으로 내가 책임을 진다.
나라는 회사(Me Inc.)의 주인으로서,
현재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
즐겁게 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진다.

나는 나에 대한 책임을 묻고 물러난다.
이제부터 새로운 나에게 나를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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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5 18:24 2010/09/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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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 고향의 맛을 느끼다.

2010/09/21 20:32, 글쓴이 잡종
8월 초, 여름 휴가 기간에 상해를 찾았다.
상해 엑스포도 보고, 평소 동양 고건축에 관심이 있던 터라,
상해 주변 도시인 항주, 소주도 함께 둘러볼 생각이었다.

여름 휴가는 보통 피서(避暑)라고 하여
더위를 피해 시원한 산과 계곡을 찾는 것이 보통인데,
8월의 상해는 서울보다 심하게 더워 40도를 육박하였다.

한 여름의 상해 여행은 그닥 좋지 않겠다는 생각은 상해 공항을 나오자마자 들었지만,
아침부터 땡볕에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피해야할 일 중에 하나로 다짐하게 된다.

민박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습하고 냄새나는 거리와 시끄럽고 붐비는 지하철,
쉴새없이 빠르게 들려오는 중국말과 알아보기도 힘든 한자들..
동방명주를 보러 온 수많은 관광객들과
주변의 숨막힐 듯한 초고층 빌딩들..

간신히 와이탄이 건너보이는 강변인 반장다다오로 이동해서 한숨을 돌리긴 했어도,
관광을 시작한지 불과 1시간도 안되어
이미 옷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고,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갈 즈음,
눈 앞에 보이는 초록색 여신...스타벅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느낌...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

씁쓸한 커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지하철 5호선 마포역 2번 출구 앞 스타벅스 마포점에 와 있는 평안한 느낌이 들었다.
상해에서 처음 느끼는 고향의 맛을,
한식당의 얼큰한 설렁탕 국물도 아니고,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에서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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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지는 100년 남짓 되었다고 한다.
1896년 고종 황제가 아관파천하여 러시아 공관에서 생활하던 시절,
러시아 사람들이 대접한 커피가 공식적인 첫 커피라고 알려져있다.

이후 커피는 신문물의 상징이 되어,
고위 공직자와 개혁 인사들을 중심으로 퍼지며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는 문화예술인들과 언론인의 모임의 장소로 활발히 활용되었는데,
영화배우 복혜숙, 소설가 이상 등이 실제로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커피는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해방 후에는 다방이라는 이름으로 주요 사교 모임의 공간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람들의 사회 활동이 많아지면서 만남의 장소가 필요했고,
문인들은 다방에 눌러앉아 글을 쓰거나 친목의 장소로,
영화인들은 간이 사무실 역할을 겸해 다방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교육 혁명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 많아지면서
고등 룸펜이 양산되었고, 그들의 피난처로 다방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다방은 음악 전문 다방, 화랑 다방 등으로 다양화되다가,
인스턴트 커피, 커피 전문점 등의 발전으로
노인들을 위한 노땅 다방, 퇴폐 티켓 다방 등으로 변화, 변질된다.

70년대 커피 믹스(76년)와 커피 자판기(78년)의 등장으로
서민 및 중고등학생 층까지 커피 문화가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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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초중반,
여행 자유화 물결을 타고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배낭여행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나도 역시 대세를 따라 95년 여름방학 때 생애 첫 해외 여행을 떠났다.

요즘에는 해외 여행이 대중화되서
여행갈 때 테마를 가지고 가라던가, 문화를 체험해야 된다던가 등등
여행 관련 가이드에 대한 정보가 많지만,
그때만해도 무조건 해외에 나가보자는 식의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할 일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관광지 돌며 증명 사진 찍기 (즐기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증명이 될 수 있도록 인물과 함께 사진 찍기)  
기념품 사기 (지역 고유의 특색있는 물건 말고, 관광 엽서같이 증명이 될 만한 것 중에도 싼 걸로)
현지 음식 먹어보기 (오리지넬러티의 아우라를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정도였다.

그 중에도 가장 힘든 일은 현지 음식을 먹어보는 일인데,
서양 음식이래봐야 햄버거와 피자 정도밖에 못 먹어본 나에게는
우선 뭘 주문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먹어봐야 입맛에 잘 맞을리도 없었다.

나같은 이들에게 유일한 대안이 있었으니, 바로 '맥도날드'
오죽했으면 도시마다 '맥도날드 지도'를 만들어서
배낭 여행객들의 식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했을까.

맥도날드의 좋은 점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표준화된 동일한 맛이 기대되기 때문에 위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메뉴가 동일해서 글자를 읽을 수 없거나 말이 안 통하는 곳이더라도
'빅 맥' 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먹을 걸 내준다는 점이다.

이번 상해 여행에서도 맥도날드와 빅맥은
중국말을 전혀 못하는 나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맥도날드에서 꾸역꾸역 빅맥을 먹고 있는 내가
왠지 모르게 처량하게 느껴졌던건 왜 일까...
왜 맥도날드에서는 고향의 맛을 느끼지 못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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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말,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 '자뎅'이 문을 열며 커피전문점의 시대가 시작된다.
향커피(flavored coffee)인 헤이즐넛 커피가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다.

99년, 스타벅스가 신세계와 손잡고 이대 앞에 1호점을 개설한다.
개화기 때와 비슷하게 미국식 '신문물'이라며 젊은이들이 열광했고,
당시 휴대폰으로 대변되는 nomadic 문화의 확산과 맞물려
에스프레소 커피와 테이크 아웃이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2010년 현재,
스타벅스, 커피빈, 자바시티, 탐앤탐스, 엔젤리너스커피, 카페베네, 홀리스커피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커피전문점들이 생기고 있다.
반면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커피점에 질린 이들을 위해
빈티지 풍의 개인 카페들이 속속 오픈하고 있으며,
북카페, 플라워 카페 등 독특한 컨셉 카페들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소개된 지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신문물의 상징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로 활약을 한다.
커피는 한국인에게 중요한 '무언가'로, 우리 사회의 주요한 구성 요소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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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는다.
개화기 고등룸펜들이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지금 스타벅스에서 재즈를 들으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가정 외 공동체 문화와 공간을 바라던 미국인들의 욕망이 스타벅스의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다방 문화를 통해 경험해왔고 지금도 커피점을 통해 이어오고 있다.
그만큼 커피와 커피샵은 우리 한국인에게는 낯설고 이국적인 것이 아니다.

다방에 모여 문화와 예술을 논의하던 옛 어른들처럼
스타벅스에 앉아 책을 보고 스터디하는 모습은 이미 우리네 문화가 되어버린 듯 하다.

스타벅스에서 고향의 맛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우리 선조로부터 물려내려온 커피와 다방 문화가
유전자에 내재화되어 우리의 유산으로 되물림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 참고문헌
강준만, 오두진 (2005),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인물과사상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10/09/21 20:32 2010/09/2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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